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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글쓰기

미디어 중독, 이젠 중독이 아니라 죄입니다

by 괴수 2025.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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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미디어 중독 앞에 선 나>

다시는 미디어 중독에 대해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았고, '의지만 있으면 된다'는 결심도 했습니다. 의지에 관한 설교 말씀을 반복해서 들으며 스스로를 독려했습니다.

 

하지만 토요일 아침, 갑작스레 코피가 나면서 마음이 느슨해졌습니다. 오늘은 좀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틈을 타고 미디어의 유혹이 밀려왔습니다. 우연히 이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 〈마지막 숙제〉의 티저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보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스스로를 설득해보려 했습니다. ‘어차피 세상적인 영화잖아. 아무리 기독교적인 색채를 띤다고 해도, 본질적인 진리에는 도달하지 못해. 너도 잘 알잖아. 기독교 상담 시리즈에서도 세상의 심리학과 혼합된 요소들 속에 진리가 가려져 있다고 했잖아?’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보고 싶은 욕망이 남아 있었습니다. 특히 엄태웅 배우가 연기한 선생님의 모습에서 ‘직업적 본질과 사명감’이라는 주제가 진지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이, 결국 영화 상영 시간도 지나가버렸습니다

 

그 무렵, 남편이 오송 지하터널 사고를 보고 난 후 꾼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물에 대한 꿈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그 사고가 궁금해졌고, 관련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남편이 말했습니다.

 

“네 엄마, 또 미디어에 빠지기 전 증상이 나와.”

 

그 말을 듣고도 나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내가 뭐 그렇게까지 빠지겠어?’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결국 나는 다시금 미디어의 늪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어느새 남편도, 아이도 함께 미디어에 몰두하게 되었고, 그 중심에는 바로 나, 내가 있었습니다.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보며 느꼈던 감정이 이런 것이었을까요? 끝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영화를 꼭 봐야 한다며 아빠와 약속한 상태였고, 저는 낯선 경로를 통해 넷플릭스를 설치해 결국 함께 보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적 색채가 있다니까, 보면서 뭔가 정신을 차려볼 수 있겠지.’

 

그렇게 또 한 번 스스로를 합리화했습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며 기독교적 메시지를 이해하긴 했지만, 여전히 혼합된 요소들로 인해 100% 진리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미디어의 여운은 계속되었습니다. 유튜브를 켰고, 점심을 준비하면서 본다는 것이 결국 저녁을 지나 새벽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사이 아이는 게임에 빠졌고, 남편도 휴식을 취한 뒤 결국 미디어에 빠졌습니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네 앞에서 내가 미디어에 빠지면,
그건 너를 망치는 일이야.
내 목에 칼이 있다고 생각하고,
목숨 걸고 이 미디어를 끊어낼게.”

 

하지만 아이를 재우는 틈을 타, 또다시 영상을 보았습니다. 그 후, 아이가 아빠에게 ‘심심하다’, ‘잠이 안 온다’며 문자를 보냈고, 결국 남편이 내 휴대폰을 빼앗았습니다. 새벽 1시쯤이었습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절망스러웠습니다.

 

“의지가 이렇게 무너질 수도 있구나.” 그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아, 역시 이건 중독이구나.” 한 번 빠지면 제어 자체가 마비되는 상태. 그게 바로 중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새벽, 천둥과 번개가 아침까지 요란하게 몰아쳤습니다. 그 강도와 지속성이 너무도 이례적이어서, 그것이 마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징계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이도, 남편도 놀라서 깰 정도였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우리 가정이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다는 절박함이 몰려왔습니다. 주일, '죄 고백의 시간' 전에 맞춰 교회에 가야 했지만 결국 지각했습니다.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토록 세상보다 못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걸까요?

 

무서우신 하나님. 그분은 사랑이시지만 동시에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징계 없이는 지나치지 않으시는 분이시기에, 그 생각이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그러나 설교 후반부, “은혜 넘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메시지가 내 마음을 무너뜨렸습니다. 나는 결국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문득 검색해 보았습니다. “알코올 중독자는 술을 어떻게 끊는가?” 왜냐하면, 미디어 중독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서서히 끊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확고한 결단, 단호한 끊음이 필요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이 질병으로까지 분류되듯, 미디어 중독도 동일한 기준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언제까지 하나님께서 나의 똥 치우는 일을 반복하셔야 한단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가 있기에, 죄를 더 지어도 된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지금 나는 결단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건 말씀을 ‘들은 것’이 아니라 ‘스쳐간 것’입니다. 사단은 나의 약점을 너무도 잘 알고, 그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그러나 나는, 넘어질 수 없습니다. 세상과 구별되어 살아가야 할 내가 미디어에 정복당하고, 시간을 허비하며 살아간다면 그것은 십자가를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이제는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단순한 결심이 아니라, 순교적인 자세로 이 문제를 마주해야 합니다.

 

순교하자.

 

더는 억울함도 없습니다. 사람이 두렵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00’라는 사람 앞에서 나는 위축됩니다. 그 영혼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조차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다른 영혼을 걱정한다고 해서 내 삶이 억울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는 그 어떤 고난보다도 크고, 깊고, 넓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나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반복적인 죄, 신물 나도록 되풀이되는 미디어 중독 속에 사는 나를 위해서. 그렇다고 해서 “은혜를 더 돋보이게 하려고 죄를 짓자”는 그런 패륜아 같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그만, 은혜를 뱉어내지 말자. 더는 은혜를 저버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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